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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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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 엄마 |
제목 : |
야생초편지 - 5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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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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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를 당한 내 꽃밭
선아, 오늘 내 꽃밭이 엄청난 화를 당했다. 장마에 쓸려 내려가거나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리는 등 천재지변을 당한 게 아니라 인재를 만난 거야.
아침에 운동장에 나가 보니, 세상에! 화단에 심어 있던 풀들이 마구 뽑혀저
땅바닥에 뒬굴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한 3분의1 정도는 되는 것 같더라.
알아보니 교도소 구내 청소하는 사람들이 잡초 제거를 하다가 화단에 나 있는
풀을 멋도 모르고 그만 뽑아 버린 거야. 멍청한 양반들 같으니라구! 둔덕을
만들어서 화단으로 꾸며 놓은 걸 보면 몰라? 일부러 키우고 있는 걸 그렇게
무자비하게 뽑아 버릴 수가 있는가 말이야. 아무리 잡초라 해도 그렇지.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냈다. 특히 애지중지 키운
왕고들빼기가 처참하게 나동그라진 모습을 보고는 분에 못 이겨 허공에 대고
온갖 욕을 쏟아 부었지.
어쩌겠니? 나는 갇힌 사람이고 저 사람들은 지저분한 교도소를 단정하게
만든다고 한 일인데.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화단을 보듬기 시작했다.
풀들은 이미 뽑혀 땡볕 아래 나뒹군 지 몇 시간이 지나 소생 가능성은 없었다.
아무래도 화단을 재정비하려면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아 담당을 앞세워 원예부로
삽을 빌리러 갔다.
삽을 빌려서 오는 길이었다. 이웃 사동 앞에 있는 좁은 풀밭에 못 보던 풀이
나 있는 게야. 가까이 가서 보니 털이 보슬보슬 덮여 있는 게 할미꽃이야.
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 틀림없는 할미꽃이야. 아마 안동 담 안에 있는 유일한
할미꽃일 거야.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손에 삽도 들었겠다, 바로 파 들어갔지. 그런데 이놈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파내는 데 엄청 고생을 했다. 할미꽃이라고 비실비실한 할미를 연상했다가
큰코 다치고 만 거지.
계호 담당은 여기서 꾸물거리다 주임에게 걸리면 야단맞는다고 재촉해 대지.
결국 뿌리가 너무 깊어 끝까지 파내지 못하고 끄트머리에서 끊기고 말았다.
그래도 그 정도의 뿌리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나의 화단으로
가져가 소중히 모셔 두었다. 또다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화단의 둔덕을 조금 더 높이고 주위의 작은 돌들을 그러모다 경계석을 쌓았다.
오늘 비록 엄청난 재난을 맞기는 했지만 내년에 탐스런 할미꽃을 볼 수 있으리
라는 기대를 안고 아쉬운 대로 사방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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