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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엄마 제목 : 야생초편지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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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과 꽃이 만발한 교도소





오랜만에 햇볕이 쨍쨍.

널어놓은 담요가 잘도 마르니 고맙기도 하구나. 담요 너는 터 한쪽 구석에 담으로

둘러친 공터가 있는데, 내년 농사 지을 두엄을 만들려고 지난 몇 달 동안 틈틈이

땅에 난 야초들을 뽑아서 쌓아 두었단다. 그래 놓고 일주일에 한 번 담요를 널러

갈 때마다 그 위에 쉬도 하고 또 풀도 뒤집어 주면서 애지중지 모셔 왔지. 그런데

지난주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운동을 하던 민경이가 큰일 났다고 막 소리를 지르는

거야. 웬일인가 하고 허겁지겁 달려가 봤더니, 아뿔싸! 소내 청소부들이 그 두엄 더미를

싹 깔아뭉개 버린게야! 봄부터 지금까지 그곳만은 청소(주로 풀뽑기)를 하지 않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어. 내가 유일하게 야생풀을 뜯어 먹는 장소마저

청소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이 안에서 풀 뜯어 먹기는 다 틀려 버린 거야. 교도소가

왜 이리 삭막해지는지 모르겠어. 풀 한 포기 없이 삭막해야만 잘 돌아간다고 여기는 건가?

심지어 구 척 담장 밑에 한 줄로 쪼로니 피어난 제비꽃마저 깨끗이 뽑아 버리니 말이야.

운동장을 달릴 때 그나마 눈요기가 되었던 고 여리고 여린 제비꽃마저 사그리 뽑아 버려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6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그래도 마당이 푸릇푸릇한 게 그리 심심치 않았단다.

우거진 풀밭은 아닐지라도, 군데군데 풀들이 자라고 그 사이사이엔 이름 모를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곤 했지. 그 무렵 이 안에 자생하던 야생초 종류가 무척 많았는데 지금은

겨우 몇 가지밖에 남지 않았다. 2~3년 전부터 청소원들을 시켜 그악스럽게 풀들을

없애버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내 옷을 벗기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후미진 곳에 나 있는 풀마저 깡그리 밀어 버리니! 이제 여기에

남은 색깔은 회색과 땅색 그리고 우리가 입은 옷 색깔인 파란색밖에 없다. 도화지를

한번 펼쳐 놓고 물감을 풀어 보아라. 회색과 칙칙한 파란색과 흰색에 가까운 땅색밖에

없으니 아무리 이 셋을 섞어 보아도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은 건져 낼 수 없을 거다.


교도소가 글자 그대로 죄인을 순화시키는 곳이라면, 건물과 그 대지도 인간성을 순화

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어떻게 하면 더욱 삭막하고

직선과 직각만이 판을 치는 환경이 되게 할까 하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곡선이 많은 건물과 마당에 풀과 꽃이 풍성한 곳에서 생활한

재소자들은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재범률이 현저히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 봄의 화신
  : 된장,메주와 함께하는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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