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빈대 -흰피를 뚝뚝 흘리며 울부짖는- 오늘 오랜만에 노동을 좀 했다. 땡볕이 조금 수그러들었으니 슬슬 가을 배추나 좀 갈아먹을까 해서 밭고랑 두 개를 갈아엎었다. 그동안 이 선생님이 매일같이 퍼다 나른 똥 + 짬밥 썩은 것들을 흙과 잘 섞어 밭고랑을 만든 것이다. 삽 든 김에 일한다고 여름내 내버려 두었던 풀들 을 싸그리 뽑아 밭고랑 한 구석에 자리를 마련하여 퇴비 무덤을 만들었다. 풀들을 걷어 내면서 보니 흰 피를 뚝뚝 흘리며 울부짖는 것이 있었다. 개체 수도 꽤 되었는데, 여기 그린 땅빈대라는 놈이다. 잎사귀는 그런 대로 보이는데 꽃은 돋보기를 들이대어야 겨우 관찰할 수 있는 작은 꽃이다. 이것은 실물 크기의 세 배 정도는 될 것이다. 아마 땅빈대를 이렇게 상세히 그린 도감은 없을 것이다. 이놈은 이름 그대로 땅에 바짝 붙어서 기어다닌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풀들 중 이끼류 빼고는 땅에 가장 바짝 붙어 자라는 풀이다. 어찌나 찰싹 붙어 있는지 발로 쾅쾅 밟아도 타격을 입지 않을 정도야. 그런 만큼 줄기가 질기기도 하지. 줄기를 똑 끊으면 흰 즙이 뚝뚝 떨어진다. 흰 즙을 내는 대부분의 풀들이 그렇듯 이것도 벌레 물린 데나 상처에 바르면 쉽게 아문다. 땅빈대는 정말 희한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풀이다. 먼저 이놈은 다른 풀과는 달리 일종 의 보호색을 가지고 있다. 위에 그린 것은 땅빈대의 선단부를 그린 것이라 잎사귀가 무성해 보이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잎보다 줄기가 더 무성하다. 그런데 이 줄기가 땅색인 데다 땅에 바짝 붙어 나니까 눈에 잘 안 띄는 거야. 게다가 잎새 가운데에 고동색 반점이 있으니 더 헷갈리지. 이놈은 방사상으로 줄기를 뻗은 뒤 각 마디마다 또 줄기를 사방으로 뻗으니 잘 자란 놈을 뽑아 들면 마치 돗자리 방석을 보는 듯하다. 아무리 길게 뻗어야 직경 30~50 센티 를 넘지 않는다. 나는 땅빈대를 보면서 다시 한번 식물의 능동적 방어기제를 확인한다. 사람이 잘 다니는 길가에 난 땅빈대는 아주 납작하게 땅에 붙어 나지만,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공터에 난 놈은 줄기가 제법 하늘로 향해 있더라구. 그러니까 이놈들이 땅에 바짝 붙어 나는 것은 특별히 땅이 좋아서라기보다 자기 보존 본능에 의해서이지. 땅빈대의 꽃은 아마 희한한 꽃 콘테스트에 나가면 틀림없이 상위 입상을 할 것이다.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돋보기를 들이대고 자세히 보면 이게 도대체 꽃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어 어리둥절하다. 보통으로 생긴 원추형꽃기둥 중간에 마치 됫박같이 생긴 씨방을 달고 있는 거야. 점선 원 안에 자세히 그려놓았다. 이렇게 괴상하게 생긴 놈들이 마디마디 다닥다닥 붙어 있어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하고 들여다보지만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니 요리조리 들여다보다가는 그냥 짜증을 내고 던져버리기 일쑤이지. 땅빈대는 장준근 씨의 도감에도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용도라든지 생태 따위가 아직 제대로 연구된 풀이 아닌 모양이다. 그동안 야생초에 관심을 기울여 오면서 느끼는 것인데, 하루빨리 정부는 국책 차원에서 야생초 연구소를 건립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 등지에 야생초 연구소 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존재 이유가 이윤 동기에 있으며 연구 목적도 제한 적이므로 생태계의 보전과 국민복리증진이라는 큰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 야생초는 그야말 로 천지에 지천으로 깔린 보물과도 같다. 이러한 보물들을 단순히 소 여물이나 관상용으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어쩌면 야생초 속에서 현재 고갈되어 가는 온갖 천연자원들의 대체물들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난치병을 위한 약과 대중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도 모두 야생초 속에 있다. 이런 곳에 투자를 아니 하고 어떤 곳에 투자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