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솔뫼안해 제목 : 가을비와 가전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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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부실한 티비가
드이어 꺼벙이가 되어 버렸답니다.
내 곁에서 아침저녁으로 쫑알거리며
말 동무가 되어 주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져서 눈과 귀 입을 닫아버린
꺼벙이를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돌면서 서글프단 생각이 들더군요.

저 꺼벙이가 내 곁에 날아온것이
울 딸램이 유치원때니까
13~14년을 동거동락한 식구라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서 버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척 하기에는
내가 너무 야박한것 같아 속 앓이를 하고 있쟈니

어느새 옆지기가 내 속내를 읽었는지
a/s센터에서 오셔서 티비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대 수술을 하고 있네요.
인심좋고 시원하게 생기신 아저씨

" 웬만하면 새로 하나 장만하시죠"

"이 비디오 비젼 제일처음 나온 모델 맞지요"

그제서야 나는 배시시 웃으며

"아저씨~~~잉 지금 고치면 십년은 더 사용가능하죠"

했더니 아저씨바로 받으며

"이제 부속 없습니다. 이번은 내가 고치지만
다음은 장담 못하니 버려야 합니다."

"진짜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가 살죠"

흐미!!!! 나 땜씨 경제가 죽었나
티비 오래오래 사용하면 알들살뜰 상을 줘야지
경제는 뭐~~~ㄴ 경제~~~
그러면서도 고치면 몇년은 끄뜩없을거란 기대감에
쉬원한 음료수까지 예쁜 쟁반에 챙기면서
팔자에 없는 아부를 떨었지요.

대 수술을 마친 티비
언제 그랬냔듯이 나를 바라보며 쫑알쫑알 ㅎㅎ
아저씨 만족한 미소를 띄며
익숙한 솜씨로 나사를 쪼이며 신기한지 또 쓰다듬으며

" 이 주위에 이 모델 사용하는집은 이집 뿐이랍니다."

하면서 딴것은 하며 집안 가전제품을 둘러보네요.

아저씨 눈이 갈수록 놀란 토끼눈이 되네요.
까스렌지는 티비와 같은수명,
세탁기는 그 보다 더 오래된것. ㅋㅋ
전자렌지도 한 십년~~~
부속 없다는 소리만 연신 하시면서
우리곁을 떠나갔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전제품과 함께 내 인생도 저물러 가는것이더군요.
저 녀석들이 튼튼한 몸으로 내게 와서는
우리 가족을 위해 힘 아까와 하지않고
열심히 노력해준 댓가로
우리집 아이들 건강하게 먹고 자고 했으니

저 녀석들이 나이들어 천덕꾸러기가 되면
나 또한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젊음은 언제나 영원하지 않은것이고
힘은 쓰다보면 다 쇠진되어서
삐극거리면 기름도 쳐야하고 나사도 죄어야 할텐데
과연 나도 기름치고 나사를 죄면
그만큼 쓸모가 있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졌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가을비가 내리고 있답니다.
소리없이 촉촉히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가 그칠 즈음에
한걸음 더 겨울에 가까이 다가가겠죠.
겨울이 가까와 지면
새벽이 하햔 서리로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뀌어 나가겠죠,
하얀 입김을 토해내는 살얼음도 서려있겠지요.

가을비가 그치면 내 마음속에도 가을이 저물고 있겠죠.
그럼 겨울을 맞이하며~~~
나와 함께한 티비와 따끈한 아랫목에서
방금쪄낸 고구마 한입물고 티비와 동무하며
긴 겨울밤을 지루하지않게 지내겠지요.

(가을비 내리는 일요일 밤 12시를 넘기며~~)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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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바쁘기만한데
  : 논은 열쪼가리....논두렁은 스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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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안해
가을비와 가전제품
2013-12-29
36163